거대한 불의의 세상에서 : <또 하나의 약속> movie


원래 현실 고발류 영화와 신파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 기준대로라면 내 레이더망에서 벗어났어야 하는 것이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지난 주말 오전에 보러 갔다.

원래 다니던 곳보다 좀 멀리 시내까지 나갔더니, 계획에 없던 깜짝 무대인사까지 있어서 박철민, 박희정, 유세형 배우님과 감독님, 제작자님을 뵐 수 있었다. 뭔가 그 자체에서 절실함도 많이 느껴졌고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약간은 숙연해진듯.ㅜㅜ

아무튼 그래서 영화는 어땠냐고 하면... 일단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다. orz

울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씬들, 대사들의 융단 폭격...... 영화 보면서 이렇게 많이 눈물 콧물 질질 짰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객석 분위기로 짐작컨데 그렇게 많이 운게 비단 나만은 아니었던 듯.

여러모로 최근에 봤던 <변호인>도 많이 생각이 났는데,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변호인>보다 세련되지는 못하다. 일단 <변호인>과 달리 <또 하나의 약속>은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기 때문도 할 것이고...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영화적'인 폼을 잡으려는 부분이나 욕심을 내려는 부분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하기에 이 영화는 너무 바쁘니까. 좀 더 '호소'와 '전달'에 포커스를 맞출 수 밖에 없었던 탓에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더 설명적으로 표현하고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더 슬프게 만들고... 그런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것들에 관객의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정말 큰 문제; 였겠으나 오히려 그런 부분이 솔직 담백하달까, 그냥 그런대로 직격탄이 되어 마음에 꽂혀버리기 때문에 관객들 반응은 대체로 좋을 수 밖에 없을 듯. 슬쩍 리뷰들을 봐도 그런 분위기고. 

<변호인>에 송강호가 있다면 이 영화에는 박철민 아저씨가 있는데 이 영화의 소탈하면서도 직설적인, 솔직 담백한 성격 자체가 그대로 형상화되어 있는 캐릭터였다. <변호인>의 송강호가 카리스마 있는 히어로라면 박철민 아저씨는 뭐랄까 좀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눈물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처럼 그려져있는 인물. '변호인'과 '당사자'의 입장 차이 만큼이나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암튼 분명히 불의와 싸우고 있는 인물인데도 멋지다 싶고 함께 따라가고 싶어지도록 이끈다기 보다는 도와주고 싶은 생각과 안타까움이 더 많이 드는... 그 미묘한 차이가 조금 흥미로웠다. 

이 인물은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주인공은 아니다. '인물' 이기 이전에 '상징'이 되어야 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건의 성격도 좀 그렇고 하다보니.. (악 그 자체인 상대편과의 강렬한 대비를 위해서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쪽은 전형적인 선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배움이 부족하고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착한. 캐릭터의 변화도 당연히 없다. 일관적으로 착하고 착하다. 물론 평범한 아버지에서 점차 사회 운동가(?)로서 각성하는 정도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캐릭터의 중심 성격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고, '성장'하는 수준. 이런 단조로운 구성이 영화적 재미만을 생각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고, 혹자에겐 '재미없다'고 느낄 만한 요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당위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허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오로지 당위성의 논리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시사성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사건 자체만 봐도 엄청나게 '드라마틱' 한 '실화'이기 때문. 그렇게 때문에 바꿔말하면 사실 조금 더 영화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그럴 수 있는 여지도 많았을터. 그에 비해서는 상당히 '다큐처럼' 만들어졌는데 역시 제작자와 연출자가 이런 노선을 부러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변호인>에 살아있는 계란...대사가 있다면 (본의아니게 자꾸 비교를^^;;;) <또 하나의 가족>에는 멍게에 관한 멋진 대사가 있는데, 툭, 마음에 와 닿는 좋은 비유였다. 뭐, 다소 설명적이기는 했지만 (말 자체는 괜찮았는데 굳이 반복하며 의미를 콕 짚어주시기까지 하시다보니...)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얘기라는 생각. 

이 영화의 예산이 정확히 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기준으론 생각처럼(?) 저예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캐스팅도 그렇고 세트들이, 특히 영화에서 무척 중요했을 공장 내부같은 것들이 꽤 정교하게, 사실적으로 잘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에 하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공장 안보냈으면, 대학 보냈으면 누나 안죽었을거 아니냐, 누나 아버지가 죽인거다'라고 일갈하는 부분. 

그 장면을 보고 느낀 첫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세상이라는게 정말 단순하지가 않구나, 모든 일의 원인도 결과도 하나가 아니고 우리가 다 알수도, 다 통제할 수도 없구나. 그런 인간 존재의 한계(?)같은 것에서 오는 허무함.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는 이 사회라는 구조속에서, 모든 것이 정의롭고 선한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잠깐 발을 헛디디면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잔혹함 속에 내던져지는 현실 속에서.. 저 운 나쁜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고 안심하는 것 밖엔,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은 거대한 무기력. 

오히려 내가 이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느낀 것은 그 지점이었던 것 같다. 기업이 나쁘다, 사회 구조가 잘못되었다, 라는 건 사실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 이 불행한 사건은 100% 그 기업의 탓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조금은, 나도 공범이었구나 하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져 주저앉아있을 수는 없다.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듯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들이, 병을 얻은 사람들의 몸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으니까. 우선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고,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용기. 이럴 때 괜히 큰 스케일로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이 영화속 박철민 아저씨 같은 캐릭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무수히 많은 불의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불의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이 영화에서는 (영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그 방법들 중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 싸움이 어렵고 힘들어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계속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슬펐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그 힘은 너무 작아보였다. 말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그 싸움에는 의미가 있다. 이 거대한 불의와 모순 속에서도 마치 없는 일처럼, 모르는 일처럼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아픈 가시 같다. '좋은게 좋은거'라는 그 무시무시한 말에서 빠져나와 진짜 세상을 보고 그것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고 등을 밀어댄다. 그래, 정말, 그래야한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많은 관객들이, 정말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는 할까? 여전히 무력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선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엔딩크레딧에 세겨진 이 영화의 수 많은 후원자와 함께, 미약한 힘이나마 마음이나마, 보태겠다고 다짐해본다. 이 사건과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의 모든 노력을 조금이라도 길게 내 마음과 머리로 기억하겠다고 다짐해본다. 

소셜테이너라는 이미지가 붙어버린 김민선이 정의감 넘치는 노무사로 출연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박혁권 배우를 오랜만에 영화에서 봐서 반가웠다. 그리고 이번에도 느낀 까메오 이경영의 존재감! 2013-2014 한국 영화를 이경영이 나오는 영화와 안나오는 영화로 구분해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201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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