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과 <필로미나의 기적>의 결정적 차이 movie


밀린 영화평이 너무나 많지만; 이것만은 꼭 쓰고 싶어서 적어둔다.

최근 개봉작들 중에서 <방황하는 칼날>과 <필로미나의 기적>을 봤는데, 한 가지 충격적인(?) 발견을 했다.
 
<방황하는 칼날>에서 정재영 배우가 괴로움에 오열하며 칼과 총을 들이 대고 있음에도 전혀 느껴지지 않던 '부정'이 <필로미나의 기적>에서는 후반부 그녀의 말 한 마디에서 사무치도록 와닿았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모정'이겠지요)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렇다.

아버지가 자기 딸을 잔혹하게 죽인 살인범을 죽이고 싶어하는건, 어쩐지 당연해보인다. 난 아버지도 아니고 딸이 살해당해본 경험도 없긴 하지만, 웬지 그럴 것 같다. 논리적인 결함이 없다. 

그러나 <필로미나...>의 결말은, 솔직히 영화를 안보고 말로만 들었다면 쉽게 납득이 안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가 될 것 같아 조심조심 씁니다만...) 하지만, 약 2시간여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영화에서 그 결말을 보여줬을 때는, 그 이상의 어떤 논리도 설명도 필요없이 마음이, 몸이 그 결말을 그냥 받아들인다. 쓱, 흡수한다. 그게 되는 순간, 상상하지도 못했던 감동이, 감정이, 같이 사무치도록 올라오고 결국 눈물을 쏟게 만드는거다. 

두 영화를 비교해볼 수록 <방황하는 칼날>은 정말 머리로 만든 영화구나, 새삼 느낀다. 상영중인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쓰는 건 지양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무색해지는데 어쨌든(;) 솔직히 말해서 영화를 보는내내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이 안되어서 보는 내내 참... 괴로웠다. 아버지도, 형사도, 정말 감정이 셀 수 밖에 없는 영화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필로미나의 기적>을 보니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물론 '복수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나 '가해자가 된 피해자 앞에서 갈등하는 형사'의 감정이 쉽게 납득된다는 이유만으로 가짜같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정말 강한 감정들이고 쉽게 동조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에, 사실 그런 감정들로는 관객을 울리기가 오히려 쉽다. 제작진도 충분히 그 가능성을 생각했기에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너무 센 감정'이라고 좀 안일하게 생각한 것일까? 적어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 감정을 몸으로 체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미안하지만 '이럴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엮어나간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뜨거운 감정들이 '전형적'인 어떤 것으로 팍, 식어버리고 만다. 

아마 관객들은 이 영화의 전개를 머리로는 충분히 납득하며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전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러니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모든 메시지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계적인 대사로 전해지고, 인물들은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공회전만 반복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심지어 개인적으론 복수를 시작하기 까지의 단계, 가장 감정이 고조되고 이입이되어야 할 그 전반부 조차도 '우리 영화는 아버지가 복수하는 얘긴거 다 알고 오셨죠?'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버지라면 이렇게 까지 처참한 죽음을 맞은 딸의 복수를 하고 싶은게 당연하다'는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에 불과하다. 관객이 보는 것은 상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상현이 '처참한 죽음을 맞은 딸의 아버지'이긴 하니까, 같은 것 같지만 실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이야기 속의 '상현'이라는 사람에게 충분히 공감되도록, 그 인물에 완전히 빠져들도록 보여주지 않으면 어떤 센 설정을 깔아둔다고 하더라도 관객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파문조차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필로미나의 기적>에 폭풍 오열을 하고 나오면서 내가 정말 감동을 받았던 위대한 영화의 주인공들을 하나씩 다시 되새겨보니 그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뭐랄까, 좀 이상한 선택을 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시>와 <타인의 삶>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 영화들이 명작인 이유도, 그 '이상한' 선택을 완벽하게 '설득'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이야기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좀 흔한 선택도, 흔한 감정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의 진폭과 거기서 느껴지는 진정성이 관객의 마음을 완전히 흔들고 사로잡으면서 어떤 논리를 세우기 이전에 마음 속으로, 몸으로 쑥 들어온다. 아무래도, 정말 보통 내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더 진짜같고 가짜같은가를, '영화'를 보면서 굳이 따져야하나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물론 그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하게될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우리가 항상 느끼는 감정, 당연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아닌, 오히려 그동안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떤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영화가 훨씬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이제서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낯선 감정을 관객에게 휙 던지는 그 '순간'에 '진짜'로 쑥, 흡수할 수 있도록 러닝타임과 함께 쌓아나가는 이야기, 연출, 연기의 공력들이 합쳐져야 하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횡설수설 쓸데없이 긴 글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필로미나의 기적> 정말 추천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우리가 아무때나 '힐링, 힐링'하는데, 오랜만에 진짜 '힐링' 되는 영화였습니다. (눈물의 정화작용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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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엔 영화관으로 : 2014 상반기 개봉영화 결산 2014-07-06 23:29:13 #

    ... sp; *위 두 영화에 대해서는 이런 글도 썼다 : &lt;방황하는 칼날&gt;과 &lt;필로미나의 기적&gt;의 결정적 차이 (http://spacemind.egloos.com/4096297) &lt;한공주&gt;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http://spacemind.egloos.com/4097381) 개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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